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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AS

미련 A/B

오늘의 할 일을 위해서는 무조건 타야만 하는 버스. 택시하나 없는 거리에서의 버스정류장은 나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 버스오기만을 기다려 정류장의 녹색 의자에 앉아서 음악을 듣는다. 그러다 길 건너 보이는 예쁜 꼬마아이에게 시선이 가고, 그 꼬마의 일거수 일투족을 유심히 지켜보며 나도 잠시 동심의 세계로 가본다. 물론 내가 그렇게 기다리는 버스가 오는지도 모른채.버스는 내가 타지 않을 것임을 알았는지 내 눈앞을 그냥 지나쳤고, 그제서야 하루에 한 대 밖에 없는 버스를 타기 위한 나의 뜀박질은 시작되었다.

상황 A.

있는 힘껏 달렸다. 정말 있는 힘껏 달렸다. 공들여만든 헤어스타일, 옷매무새, 다 필요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미쳤다고 쳐다봐도 상관없었다. 그저 내 앞으로 점점 더 멀어져가는 버스만 제발 타고 싶었다. 나의 목적지에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은 하루에 딱 한대 오는 이 버스이고, 그래서 나는 꼭 이 버스를 타야만 했다. 아까 건널목의 꼬마가 원망스럽다. 꼬마가 귀엽건 안귀엽건 간에 쳐다본 내가 후회스럽다. 하지만 현대과학기술로는 돌아가지 못할 시간앞에 그 후회도 소용이 없다. 저 버스를 타지 않으면 안되는데. 오늘 버스를 타지 않으면 앞으로 영원한 실직자가 되버릴텐데. 나는 미쳐가기 시작했다.

버스와 나의 간격은 더욱 멀리 벌어져 더 이상 나의 체력과,나의 동공상태와, 나의 심장박동상태, 호흡기 상태, 다리근육의 수축과 이완의 정도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뛰었지만 버스는 뿌연 매연을 뿜어대며 엔진의 흡입 - 압축 - 점화 - 배기 의 단계를 수없이 반복하며 나와의 거리를 현저히 증가시킨다.

그래서 나는 그나마 빨리 포기를 하고, 목적지로 가는 다른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버스가 너무 빨라버렸기에 나는 건널목에 있는 아이를 봤던 나 자신에게 후회하고 질책할 뿐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최선을 다했으나 버스는 너무 빨라 나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음을 빠른시간 내에 알게 되었고, 빠른 포기와 함께 다른 방법을 생각하는데에 별 미련이 없었다. 혹 운전기사가 백미러를 통해 미친듯이 뛰어오는 나를 발견했을수도 있다. 하지만 버스는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는 원칙적으로는 멈추어서는 안되고, 이미 힘겹게 4단기어까지 올린 버스가 미친듯이 뛰어오고 있는 나를 위해 멈출 필요는 없었다. 어쩌면 조금은 악한 운전기사라서 미친듯이 뛰어오고 있는 나를 보며 즐겼을지도 모른다. 마치 쳇바퀴를 미친듯이 돌리는 다람쥐를 보며 웃던 나처럼. 하지만 상관없다.그렇게 즐기기에는 버스는 너무 빨랐고, 나와의 거리가 빨리 멀어져 내가 빨리 포기를 했으므로. 즐기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시간이라 나도 덜 억울하고 덜 비참하게 느껴진다.

 

상황 B.

있는 힘껏 달렸다. 정말 있는 힘껏 달렸다. 공들여만든 헤어스타일, 옷매무새, 다 필요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미쳤다고 쳐다봐도 상관없었다. 그저 내 앞으로 점점 더 멀어져가는 버스만 제발 타고 싶었다. 나의 목적지에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은 하루에 딱 한대 오는 이 버스이고,  그래서 나는 꼭 이 버스를 타야만 했다. 아까 건널목의 꼬마가 원망스럽다. 꼬마가 귀엽건 안귀엽건 간에 쳐다본 내가 후회스럽다. 하지만 현대과학기술로는 돌아가지 못할 시간앞에 그 후회도 소용이 없다. 저 버스를 타지 않으면 안되는데. 오늘 버스를 타지 않으면 앞으로 영원한 실직자가 되버릴텐데. 나는 미쳐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버스와 나의 간격은 조금씩 좁아지는 듯 하다. 원래 달리기를 잘 해왔던 나지만 이 버스가 천천히 가고 있어서 금방 달려가며 손짓만 하면 운전기사가 나를 알아보고 차를 세워줄것만 같았다. 나와 비슷한 속도로 달리고 있는 버스를 탈 수 있다는 희망에 나는 기쁨의 힘이 밀려왔고, 더욱 힘차게 달렸다.

하지만 한참을 달려도 버스와 나의 간격은 그대로이다. 더 줄어들지도 않고, 더 멀어지지도 않고 - 그대로이다. 나의 희망은 아직 사라지지 않는다. 조금만 더 힘껏 달리면 버스기사가 나를 알아볼 것이고, 금방 차를 세워줄 것이다. 숨이 가빠지고, 동공이 커지며, 다리가 풀려버리고, 몸 속 모든 모세혈관이 터질듯이 뛰면서도 그러려니 생각하며 계속 달렸다. 한참을 달려 더 이상 서행하던 버스와도 같은 속도로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린 나는 그제서야 버스와의 간격이 서서히 멀어짐을 느낀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의 체력소모, 난 저 천천히 가는 버스를 탈 수 없게 됨을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멈추어버린 나는 그만 도로가에 털썩 누워버린다.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숨을 쉬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다리에 감각은 전혀 없고, 차가운 땅바닥의 무서운 기운만이 느껴질 뿐이다. 미친듯이 달린 지 한시간이었던가 - 더 이상 다시 일어나 다른 방법을 모색해볼 체력도 없고 정신도 없다. 이 버스를 타지 않으면 영원할 실직자가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상황으로는 어쩔 수가 없다. 달리 방법이 없다 - 나에게는 그 버스가 내 수단의 전부였다. 누워서 흑백영화의 필름을 빨리 돌리듯 아까의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갑자기 아까의 길 건너 꼬마아이 - 죽이고 싶을만큼 미워졌다. 물론 쳐다본 나도 잘못이었지만 귀여운 그 꼬마가 잘못이다. 또한 그 꼬마를 유심히 쳐다본 나도 죽이고 싶다.

혹 운전기사가 백미러를 통해 미친듯이 뛰어오는 나를 발견했을수도 있다. 아니다, 혹이 아니라 분명히 운전기사는 백미러를 통해 미친듯이 뛰어오는 나를 발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젠장할 버스기사는 나를 가지고 놀았다. 미친듯이 뛰어오는 나를 보며 일부러 나와 비슷한 속도로 운전하여 나의 희망을 키웠고, 기대한 만큼 실망하도록 철저히 잔인하게 한시간을 그렇게 달렸다. 한시간이나 쳐 달리면서 왜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을까. 빌어먹을. 내가 알고있는 갖은 욕설을 토해낸다. 얼마나 나를 보며 웃었을까. 키워온 희망을 철저하게 밟아버리며 얼마나 고소해 했을까. 나중에 그 운전기사를 길에서 우연히 보게 된다면 기필코 죽여버리리. 내 눈앞에서 띄지 말란 말이다.

하지만 아까의 버스에 대한 미련은 사라지지 않는다. 조금만 내가 더 달렸으면 탈 수 있지 않았을까. 혹시라도 운전기사가 나를 못봤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내가 미친듯이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지르며 달렸다면 혹시라도 세워주지 않았을까. 조금만 더 오래 달렸다면 혹시 백미러를 통해 나를 보고는 세워주지 않았을까.

수많은 가설과 착각속에 도저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나는 집착해가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니, 길건너 꼬마도, 운전기사도 아닌 내가 모든것을 잘못한거 같다. 진짜 나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내가 미웠다. 왜 이런 젠장할 곳에 살아서 수단이 버스밖에 없었을까. 아예 처음부터 중심가에 살았다면 다른 방법도 많이 있지 않았을까. 근원적인 것에서부터의 증오가 밀려온다. 드디어 미련이 집착을 거쳐 나는 미쳐버리고 있다. 그리고 차가운 땅바닥의 어두운 기운에 내 눈은 서서히 감기고 있다.


혹시 가슴아픈 이별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모든것을 되돌리고 싶고, 붙잡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가슴아픈 이별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다행히도 이별한 사람을 그 뒤로 볼 수 있는 여건이 안되어, 우연히 길가에서 스쳐갈 인연도 안되어 이별 후에 전혀 볼 수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얼마나 미련이 남고, 얼마나 추억으로 간직하며, 얼마나 사랑이었는가를 돌이켜 볼 수 있을까. 또한 얼마나 나를 사랑하며, 얼마나 다시 일어서 내가 가야할 길을 갈 수 있는가 - A처럼.

불행히도 이별한 사람을 그 뒤로 계속 보며 지내야하는 여건이라면 - 지역적인 상황, 공적인 상황 등 이별 후에도 계속 마주치며 지내야 한다면 어땠을까. 얼마나 미련이 남고, 얼마나 추억으로 간직하며, 얼마나 사랑이었는가를 돌이켜 볼 수 있을까. 또한 얼마나 나를 사랑하며, 얼마나 다시 일어서 내가 가야할 길을 갈 수 있는가 - B처럼.

상황 B에 힘들어 하는 ...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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