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의 외출이었다. 오랜만에 긴 거리를 걸어보는것이 적응이 안되는듯 들썩들썩 걸어가는것이 느껴져서 잠시 우스웠다. 더웠다. 여름이니, 게다가 폭염이니 오죽할까. 벌써부터 팔 언저리가 끈적거린다. 방금전에 끄고 나온 에어컨이 그리워진다. 시끄럽다. 여름이니 당연히 울리는 저 매밋소리. 어디서 울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녀석들은 아주 합창을 하고 앉아있다. 나는 어디에 어떤 녀석이 붙어있나 버드나무를 자세히 올려다본다. 저기 한마리. 어 또 한마리. 아, 저기도 앉아있네. 어라, 쌍으로 앉아있는 녀석도 있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문득 매미를 잡으러 다니던 초등학교시절이 생각났다.
초등학교시절, 나는 글쎄 동네에서 꽤 노는 아이중에 한 명 이었다. [골목대장]이라고 하면 좀 그럴까나. 어쨋든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하루종일 뛰어다녔던 기억이 난다. 부지런도 하셨지. 여름이면 아이들과 매미채를 만들러 다녔다. 문방구에서 파는 매미채는 시시했다. 길이도 짧고 망도 작고. 저래가지고는 매미 100마리를 잡는것은 무리다고 여겼다. 그래서 우리는 톱을 가지고 대나무를 자르러 다녔다. 내 키의 두배는 훌쩍 넘어보일만한 대나무를 톱으로 슥슥 자르고는 철사로 둥그렇게 만들고는 끝을 꼬아 대나무에 튼튼하게 박는다. 집에서 가져온 다마내기 자루(양파넣는 자루 - 붉은색)를 씌우면 완성.
그때부터 1990년대의 불쌍한 매미들은 그렇게 땅에서 7년을 기다리다 일주일을 겨우 살지도 못하고 우리에게 생포되었던것이다. 한마리 한마리 망에서 꺼내는것도 귀찮아서 그냥 한마리 잡고는 그대로 매미채를 어깨에 둘러매고 또 한마리 잡고, 또 한마리...그렇게 잡은 녀석이 100마리는 족히 되어보인다. 이때쯤 되면 나의 어깨는 슬슬 무거워지며 나의 입가의 미소도 더욱 귀에 걸린다. 녀석들은 살려달라고 아둥바둥. 하지만 너무나 많은 녀석들이 망에 있기에 자기들끼리도 정리가 안되는 모양, 서로 엉켜서 울기만 한다.코를 가까이 갖다대면 시큼하게 나는 매미 오줌냄새. 그 정도 되면 나의 하루는 즐겁게 마무리된다.
사실 그 100마리남짓의 녀석들을 어떻게 했을까. 몇 마리는 서로 사랑한다고 억지로 마주보게 해서 깔깔거리기도 하고 몇 마리는 똥꼬에 기름을 살살발라 라이터로 불을 붙여 커다란 반딧불이라며 즐거워하기도 했었다. 또 몇 마리는 몸통에 실을 매어 날리기도 했었다. 살림에는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는 녀석들을 고이 집에 모셔다 둔다. 밤에는 잠못자게 찌리릭 찌리릭 울어대는가 하면 왠 오줌은 그렇게 많이 싸는지 아침이 되면 그 주변 냄새가 지독하다. 하지만 녀석들을 꼭 채집통에 넣어서 집에 가져와야했다.
우리는 왜 그토록 매미를 잡으려 했을까.
아마도 그 어릴적부터 소중하다고 느끼는것을 [구속]하는것에 대한 어떤 쾌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았는지. 나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도 않는 것에 집착하여 굳이 나보다 나약하다는 이유로 또한 소리내어 신기하다는 이유로 소중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구속하려한 것은 아닌지.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은 낡은 신발장 속 채집장에서 울고 있는 몇 마리의 매미가 아니라 버드나무에 매달려 합창을 하고 있는 수많은 매미들의 모습일텐데. 그것이 진정한 여름의 풍경일텐데. 왜 우리는 너도나도 그렇게 대나무를 잘라 튼튼한 매미채를 만들고 한두마리도 아닌 수십, 수백마리의 매미를 잡아 어깨에 둘러매고 히죽히죽 즐거워했는지.
한참동안 버드나무를 올려다본 나는, 갑자기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며 어리석었음을 느꼈다. 진정 부끄러운것은 그것이 아닐텐데. 버드나무를 보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다시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