쵸코 안녕?
널 처음 길가에서 봤을때,나는 어떤 운명같은 것을 느꼈단다. 비록 길가에서 값싼게 분양되는 너였지만 너는 왠지 내가 키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사실 강아지를 키워 본 적이 없는 나였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나였기에 너를 파는 아주머니께 이것저것 참 많이도 물어봤어, 정말 한참을 물어보고 또 물어봤지. 너는 뭘 좋아하는지, 또 아프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널 안자마자 이름을 지었어, 까만 털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너에게 딱 맞는 이름, 쵸코.
널 안고 집에 오는 길은 너무나 행복했어, 모든 사람이 너만 쳐다보는것 같았지. 까맣고 맑은 눈동자, 나를 향해 부리는 애교, 정말 사랑스러웠던거 아니? 넌 참으로 따뜻했어, 사람들이 귀엽다고 널 너무 많이 만져서 많이 피곤했나봐, 오는 내내 내 품에서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지. 너무나 작은 너였기에, 아직 내 손바닥만한 너였기에 너를 위한 공간도 마련하고 과자를 좋아한다는 아줌마의 말씀대로 집에 오는 길에 과자도 몇 봉 샀지.
정말이지, 정말 잘해주고 싶었거든.
넌 아직 세상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나를 생각해서인지, 정말 천성이 착해서인지 너를 안고 있는 한시간 남짓하는 시간동안 실례도 하지 않았어, 사실 내심 그걸 걱정했는데말야,
"여기가 이제 우리집이야 쵸코."
방바닥에 너를 내려놓자마자 너는 뭐라도 할 듯 가만히 있더라, 이내 너의 뒤에서 무언가가 나왔어. 윽, 쉬야했구나 이녀석-
사실 액체가 나오길래 쉬야했다는 생각에 너무나 귀여워하고 있었는데, 색깔이 다르더구나. 그건 쉬야가 아니라 설사였어. 너무나 놀란 나머지 모든 지식인들이 모여 있다는곳을 검색했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설사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너의 보금자리를 만들기 시작했어. 물론 내일 오전에 널 병원으로 데리고 갈 생각도 하구 말야.
니가 따뜻하게 잘 수 있는 침대도 만들고 인터넷을 뒤져서 니가 앞으로 먹을 음식과 니가 가지고 놀 장난감, 니가 심심할때 씹을 껌,너의 화장실, 폭신하고 아름다운 너의 집, 치카치카 할 치약, 귀지를 없애는 제품까지 주문했어. 난 정말 너에게 모든것 잘해주고 싶었단다. 너는 피곤했는지 쌔근쌔근 자는데, 숨쉴때마다 볼록볼록거리는 너의 배가 어찌나 귀여웠는지, 하마터면 널 깨물어버릴뻔 했단다. 컴퓨터 중독인 내가 조용조용 컴퓨터를 끄고 발걸음도 살살, 조심조심해서 니가 깨지 않도록 잤단다.
아침햇살에 눈을 떴는데 넌 이미 일어나있었어. 아직 짖지 못하는 너였기에 끼잉, 끼잉 거리며 내가 만져주길 바랬던것 같아, 세수도 안하고 모자만 눌러쓰고 널 안고 병원으로 데리고갔어. 역시나 가는길에 사람들이 모두 너만 쳐다보더구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녀석, 너무나 자랑스러워 너를 번쩍 안고 정면으로 너의 눈을 보며 말했지.
"너무 이뻐,"
하지만 나는 놀라고 있었어. 태어나서 한번도 보지 못한 강아지의 누런 콧물을 보게 된거지. 어젯밤, 잠결에 너의 기침소리를 얼핏 들었던 것 같기도 해. 감기가 들어서 설사를 한건가? 아무튼 발걸음을 더욱 재촉해서 널 병원으로 데리고 갔어.
"이걸 왜 샀어? 어디서 샀는데? 이걸 왜 샀어 이사람아..."
너를 처음 보자마자 꺼낸 의사선생님의 말이었어. 나는 순간 너를 만난 순간부터 병원을 갔을 때까지의 12시간이 영화필름 빨리 돌리듯 스쳐지나갔어,
"아무거나 잘 먹어요, 사람먹는것도 먹는다니깐?"
"아프면 병원 데리고 가지 말고 사람먹는 약 먹여도 돼, 병원 데리고 가면 다 돈이야 돈."
"얘가 제일 이쁜 놈이지, 얘는 값을 더 받아야 하는데..."
"잘 키울것 같으니깐 보내주는 거에요."
하지만.
"지금 얘는 장도 안좋고 애가 너무 약해."
"딱 보면 모르나? 눈꼽껴있고 콧물 질질 나오는데 왜 얘를 샀어.."
"원래 길거리에서 파는건 사는게 아니야, 거의 다 죽어."
"생긴건 잘생겼는데 애가 너무 약하다...사실 치료해주고싶지 않지만 생명이 불쌍해서 치료해준다..."
(이 말이 사실 좀 아이러니했는데, 나중에야 그 뜻을 알았어.)
나는 가끔씩 사람들에게 너무 순진하다는 말을 듣는데, 솔직히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정말 그 사람들 말이 맞는것 같아. 고등학교때는 용산 전자상가에서 6만원 부르는 스피커를 깎아서 깎아서 4만 6천원에 샀는데 똑같은 제품이 동네가게(제주도)에 있길래 내가 얼마나 싸게 샀는지 그 심리를 보상받으려고 가격을 알아보니 3만원이었었지, 유럽 여행때는 유럽의 야바위에게 속아서 50유로나 되는 돈을 그자리에서 잃었지, 그 밖에도 참 여러가지로 사람말을 너무 잘 믿어서(귀가 얇아서) 많이 속았지만, 이번만큼은 그것이 아니라고 보여주고 싶었어. 너에게 주사를 맞히고 면역력을 더욱 키워주는 모유와 같은 성분의 우유와 사료를 사고 집으로 돌아왔지. 돌아오는 길에 너는 몇번의 구토와 설사를 하더구나, 내가 안고있는데도 말이지. 얼마나 아팠으면 그랬을까, 얼마나 아팠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매일 일어나자마자 켜는 컴퓨터도 오늘은 한번도 켜질 않았어. 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더구나. 너의 조그만 입을 벌리고 억지로 약을 먹이고, 먹지도 않는 우유를 먹이려고 하는 그 상황이 너무도 슬프고 아프더구나. 그 어린것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아픈곳이 없는데, 슬슬 그 아줌마가 원망되더라,
밤에 촬영이 있어서 너는 침대에 두고 밥도 챙겨놔두고 나왔건만, 마음이 한시도 편하지가 않더구나. 그저 빨리 너에게로 돌아가 너를 따뜻하게 돌봐줘야겠다는 생각뿐, 원래 촬영끝나고 밤새 사람들과 어울리는걸 즐겼지만 이번엔 촬영이 끝나자마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달렸어. 돌아오니 밥도 많이 먹었고 잠도 잘 잔것 같은데, 여전히 설사를 많이 한 것 같더구나. 마음이 아팠어.
피곤한것도 전혀 모르고 잊은 채 너에게 약을 먹이고 너는 쉬게 했어. 내일 병원가서 주사 한 대만 더 맞으면 될거라고, 그래서 니가 건강해지면 맛있는것도 많이 주고 예방접종도 다 해서 정말 오랫동안 같이 있을거라고, 마음이 아프고 슬프지만 순간 그 생각에 행복했어.
기운을 많이 차린것 같기도 한 너는 요리조리 걸어다니기도 하고 아직 짖지도 못했는데 슬슬 짖는 시늉도 하더구나. 물론 야심한 밤이라 니가 짖는 시늉 할때마다 바닥을 치며 조용하라고 했지만 말야,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렇게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고 원래 촬영끝난 다음날은 거의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기 마련인데, 9시가 되니 눈이 딱 떠지더구나, 너도 참 조용히 자고 있었고, 이제 모든것이 잘 되는구나 생각했지. 또 순간 행복했어.
그런데 뭔가 이상했어, 볼록볼록 숨쉴때마다 귀엽게 움직이던 너의 배가 가만히 있는거야, 난 잠결에, 또 안경을 안쓴 상태라 눈이 나빠서 그걸 못느끼는가보다 했어. 가까이에서 널 보는 순간 난 한동안 얼어있었단다. 한치의 움직임도 없는너, 혹시나 하고 만져보니 차갑게 식어버린 너.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있더구나..난 한동안 너의 차가운 몸 위로 뜨거운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었어.
모든게 원망스럽더구나. 죽으면 너무 슬플것 같은 막연한 생각에 동물은 태어나서 한번도 키우지 않았는데, 그래서 잘 죽지 않는 식물만 골라서 키웠는데, 너의 눈망울을 봐버린 내가 원망스럽고, 아무거나 먹여도 된다고, 설사하면 정로환을 먹이라고 했던 그 아줌마도.. 차갑게 식어버린 너를 보며 그때서야 그 의사선생님의 뜻을 알았지. 치료해주고 싶지 않지만 생명이 불쌍해서 치료해준다는 말을. 그래, 치료해도 죽을확률이 많다고 그때는 그렇게 믿고싶지 않았던거야.
난 문득 겁이 났어. 태어나서 한번도 사랑하는 것을 이 세상에서 떠나보낸적이 없으니. 난 미친놈처럼 몇번이고 너를 부르고 또 불렀어. 쵸코라는 너의 이름을말야. 몇번이도 만지고 또 만졌지만 너는 너무나 차갑더구나. 내 심장을 얼릴만큼 차갑더구나.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많은 시간 함께하지 못하고 이렇게 널 혼자 보내서 넌 그렇게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나는 무얼 했었나. 참아도, 참아도, 참아도..흐르는 눈물을 멈출수가 없구나.
너의 마지막이라도 행복하게 보내주고 싶었단다. 내가 자주 다니는 길목 양지바른 따뜻한 곳에 너를 묻었어. 이 못난 아빠, 그래도 모질게 남아있는 그리움에 드나들며 인사할까해서,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나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쵸코라는 너의 이름을 부르는 내 음성에 나를 향해 방긋웃고 아장아장 잘 걷지도 못하면서 오는 니가 있어서 행복했어. 그래도 내가 좋은지 내 손바닥과 손가락을 핥아주는 니가 있어서 행복했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짖는 시늉한다고 조용하라고 화낸걸. 그래 세상원망하는 소리라도 마음껏 질러보라고 할껄. 하지만 난 니가 세상을 원망하지 않도록 잘해줄 자신이 있었단다.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그래도 마지막을 나와 함께 할 수 있게 해줘서, 내 심장을 뜨겁게 만들어줘서.
부디 다음 세상에서는 나같이 무식하고 나쁜 아빠 만나도 무럭무럭 잘 자라도록 꼭 건강하게 태어나거라. 그때는 아무리 짖어도 뭐라고 안할테니 꼭 건강하게 태어나서 나에게 반갑다고 마음껏 짖거라.
용서해줘. 너와 함께 했던 많은 약속 지키지 못한걸..
내 가슴속에 고이 너를 묻는다,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못다한 너와 나의 말들과 함께.
안녕 쵸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