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OTAS

아빠와 검정색 드럼

서기 일천구백구십구년 이월 십삼일.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내가 하고자 한 것을 이루었던 날.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앞으로의 내 삶의 작은 추진력있는 엔진이었고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희망이었다. 나는 원래 음악을 무지 좋아했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는 타악기에 관심이 많았다. 정확히 말하면 Drum을 가장 좋아했고, 남들이 보컬에 신경써서들을 때 나는 드럼의 미세한 소리까지 관심을 가지며 들었었다. 그래도 6학년때 내가 다루었던 꽹가리..그리고 사물놀이패에서 최고자리인 상쇠..어쩌면 그것이 내 타악기 실력의 밑거름이 되었는지 모른다.

나의 타악기에 대한 관심은 중학교때도, 그리고 고등학교때도 여전했다. 소위 "책상드럼"이라는 내가 개발한 양손의 검지와 중지, 그리고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리는..제법 드럼과 소리가 비슷하여 어떤 친구는 나에게 삐삐멘트로 책상드럼 연주를 녹음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었다. 한동안 쉬는 시간만 되면 너도나도 책상드럼을 연주(?)하느라 온 교실이 시끄럽기도 했다. 고등학교때 들어와서는 드럼에 관한 나의 관심이 절정에 달하여 밴드부에 놀러가서 항상 드러머 친구를 보며 부러워했었고 드럼을 손발 따로 연주하는것이 신기하기만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체육시간에 교악대에 있는 친구를 꼬득여 교악대실에 갔었고 거기서 나는 처음으로 어설프지만 나름대로 허공에서 연습한 실력아닌 실력으로 드럼은 연주해보았다. 허공에서 연필을 스틱삼아 연습했던 거랑은 너무나 차이가 났으며 손발이 따로 노는것이 너무 어려웠고, 나는 또 멋지게보이려고 일부러 세게 드럼을 쳤다. 그 때..

"빠직"

내 손에 있던 스틱은 부러졌고 나는 너무나 당황해서 어찌할 줄 몰랐던 그때. 고3때 일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남의 악기에 손을 대기가 그랬다. 음악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자기 여자친구를 다루듯 아끼는 악기를 다른사람이 연주하는것 처럼 찝찝한게 없다. 그래서 나는 졸업하고 꼭 드럼을 사겠노라고 결심을 했고 어렸을 적 기타를 연주했었던 아버지는 수능이 끝나는 날 나에게 드럼을 사 주셨다. 그 드럼은 나에게 있어서 희망과 꿈을 쫒는 매개체였으며 아마 내가 평생 떠올릴 그런 드럼이었다. 나는 이미 계획한대로 매니져하는 친구와 멤버를 구했고 우리는 서투르지만 피나는 노력끝에 1999년 2월 13일 우리팀의 이름을 건 첫번째 공연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한 가지에 몰두 한적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 후로 우리 멤버들의 실력은 날로 발전하고 대학을 다니면서 조금씩 모아둔 돈으로 점점 더 좋은 악기를 구입하게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아버지께서 처음 사주신 대만제 드럼과 서투르지만 피나는 노력을 했던 그때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대학교 2학년때 제법 실력있는 아마추어 드러머라고 후배들이나 친구들이 가르쳐달라고 했을 때 예전에 내가 드러머 친구를 보며 신기해했던 그 때를 떠올리며 잠시 웃어보기도 했다.

지금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이지만 나의 마음속에 그 대만제 검정색 드럼과 아버지의 사랑은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NOTA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마음  (0) 2009.05.07
약속  (0) 2009.05.07
먼지낀 너  (0) 2009.05.07
꽃봉오리  (0) 2009.05.07
매미를 보는 소년  (0) 2009.05.07
엄마 찾는 아이  (0) 2009.05.07
단풍  (0) 2009.05.07
순결한 그녀  (0) 2009.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