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밀도가 높은 대한민국, 그 중에서도 숨막히는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서울 한복판에서 살다보면 사람들이 내뿜는 독기에 몇 시간이 지나지도 않아 몸이 파김치가 될 때가 종종 있다. 어렸을 때는 외향적인 성격때문에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곳을 좋아했는데 사람이 내뿜는 독기를 느끼기 시작한 20대 중후반에 다다라서는 쉽사리 지치곤 해서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성격이 남에게 싫은소리 하는것을 남에게 싫은소리 듣는것보다 더 싫어해서 그런지 마음에 담아둔 사람들의 독이 가끔은 생리적 현상으로 표출되기로 했다. 그래서 혼자 있는 것을 꽤나 즐기는것 같기도 하다.
혼자 있다 보면 사람의 독기를 느낄 수가 없어서 평화롭기 그지 없지만 정작 내가 담아 둔 독기에 내가 빠져 허우적거릴때가 있다. 적을 적으로 보지 못하고 나를 적으로 보는 까닭에서일까. 그럴때는 한없이 '우울의 모래늪'으로 빠질 위험이 크다. 허우적 댈때마다 더욱 깊숙한 곳으로 내 몸을 끌어당기는 그 늪은 분명 사람만이 구해줄 수가 있다. 사람만이 답이 아니라고 한다면 반드시 다른 늪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 하지만 다른 늪으로 옮겨가도 이내 깊숙히 빨아들이는 고통에 또 다른 늪을 찾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만신창이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연유로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함을 느끼고 그것에 힘들어 하지만 예술가는 심지어 고독을 즐기기까지 해야 한다. 만성피로를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가는 세일즈맨같이 고독을 업고 웃는 모습으로 걸어가야 한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나는 그것이 너무 어렵고 힘들다. 특히나 사람들이 뿜는 독기에 숨이 막혀옴을 느끼기 시작한 나이가 되면서 아이러니한 결과로 고독에 힘들어해야 했다. 하지만 아직 사춘기의 끝자락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시기에 그것에 대처하는 정신적 힘이 부족함을 느낀다. 그래서 동반자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컸었고 거기에서 오는 상처는 배가 되기도 했다. 찢어지는데다 곪아서 제대로 아물지도 않는다. 그러다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생기기도 한다.
요즘은 동반자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된다. 내가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가 동종업계 사람들끼리 소위 말하는 '윈윈게임'을 제안하는 것이다. 사실 말이 안된다 생각한다. 그 말과 동시에 서로 간을 보기 시작하고 정치적 행동의 시작이 된다. 즉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독기가 맹독성을 띄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동시에 서로 물게 되고 독기가 강한 쪽이 이긴것 처럼 보이나 남게 되는건 서로가 남긴 흉터요 만신창이가 된 몰골이다. 그래서 나는 함부로 윈윈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을 경계한다. 동반자는 적어도 그러한 경계심조차도 생각할 수 없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인생에 있어 동반자는 극히 드물다. 세계인구 60억이 오바라고 생각된다면 서울 인구 1500만에서 동반자는 불과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우선 가족을 들 수 있다. 낳아주신 부모님, 그리고 형제자매. 더 나아가 집안끼리 사이가 돈독하다면 친척들까지. 팔이 무조건 안으로 굽을 수 있는 최대의 범위. 하지만 생각보다 그 폭은 좁다. 그리고 친구, 애인, 직장동료 등. 살면서 가족이 아닌 '남'이 나와 대화도 신기할 정도로 잘 통하고 기호도 비슷하다면 동반자인 '님'이 될 확률과 속도가 제곱수로 높아진다. 하지만 여기서 마음의 문단속이 해이해져 치유하기 힘든 아픔을 주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글을 늘어놓는 이유는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동반자라는것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다.
사실 살면서 극복하기 힘든 일에 부딪혀 거울을 보기도 힘들 정도로 나약해져있을 때 곁을 지키는 사람이 진짜 동반자인데 그것을 참으로 많이 잊고 살았다. 어머니, 아버지, 동생은 항상 내 걱정을 해 주신다. 내가 가족을 생각하는것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10년간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그만큼 가족에 소홀해졌다. 그래서 힘이 들수록 가족에게 연락이 뜸해지고 오히려 가족에게 짜증과 화를 토해냈다. 그러다가도 힘이 들면 생각나는것이 가족임을 깨달을 때면 상상이상으로 내가 미워진다. 무조건 내 편을 들어줄 사람들은 일단 가족인데, 내 편을 자꾸만 잊고 내 편이 되어줌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며 살아가는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나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가족에 대한 집착이 서서히 나오는 듯했다. 인생의 1/3을 혼자 지내다 보니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나의 생활속 먼지처럼 쌓여만 왔고 나는 거기에 대한 대안으로 내가 미래에 꾸릴 새로운 가족의 구성원으로 정했다. 즉 미래의 내 마누라. 현재의 애인 혹은 여친. 그래서 나는 연애를 할 때마다 남들이 생각하는 애인이라기보다는 가족으로 생각의 치환을 한 것 같다. 어쩌면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보통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는 때가 내 애인이 가족같을 때이고, 내가 보통 섭섭하거나 혹은 화가 나는 때가 내 애인이 가족같이 않을 때였다. 나만의 커다란 욕심일 수도 있었다. 진지하게 내려진 결론이다. 그러면서 '나의 새로운 가족구성원'에 대한 실망이 커져갈수록 내 현재 가족에게 그 화살이 날아갔다. 나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번에 친구들과 함께 강원도에서 짧은 여행을 했다. 아름다운 풍경, 시원한 바람, 따뜻한 햇살, 깨끗한 공기도 물론 나의 삶에서 많은 행복과 위로를 제공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있는 시간동안은 가만히 있어도 향기가 난다. 그 향기를 맡고 있으면 취하고, 향기에 취해 나의 외로움과 상처는 사라지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그래서 최근 친구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우리나라를 다 돌아다녀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삶에서 이러한 향기가 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존재한다. 내가 어떤 말을 내뱉어도 오해가 되지 않는 나의 몇 안되는 (친한)친구들, 그리고 나와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광모형, 영은씨. 요즘에는 내가 소개시켜 준 치킨집에 푹 빠져 일주일에 한두번은 닭다리를 뜯으며 담소를 나누는데 그때마다 향기가 났다.
내가 힘이 들 때, 외롭고 지칠 때, 그래서 내가 한없이 작아지고 거울속에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곁에 있어주는 이 향기나는 사람들이 내 동반자라는것을 이제 깨닫기 시작했다. 정신적으로 성숙이 늦어서 이제야 깨닫는다. 내가 힘이 남아돌고 물질적,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그래서 거울속의 나를 자신있게 쳐다볼 수 있는 그런 내모습만 사랑해주는 사람은 기회주의자며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결혼하지 않은 이상 가족이 아니다. 지금껏 나의 '착각속의 가족'이 가장 나와 가깝다고 생각해서 그 사람만이 나의 동반자가 될 것라고 여겼던 내 자신이 참으로 어리석음을 다시금 느낀다. 마음의 문단속을 잘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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